李壽珏
壽珏1872. 7. 13 ~ 1955. 4.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2년 7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창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이종구(李鐘龜)가 주도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이종구는 본래 영양군(英陽郡) 출신의 양반으로, 3월 19일 창수면 오촌동(梧村洞)·삼계동(三溪洞)·신기동(新基洞)의 주민들 200여 명을 규합하여 창수주재소로 향하였다. 도중에 시위대에 합류하는 주민의 수가 늘어나 창수동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시위대의 규모는 약 400여 명 이상이 되었다. 이때 아들인 이학술을 시켜 집집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만세시위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도록 하였다. 마을주민들을 규합하여 창수주재소 앞으로 나아갔다. 창수주재소에 시위대가 도착한 것은 3월 19일 오후 4시 경이었다.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각자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였는데, 행렬 중에는 막대기나 곤봉, 도끼 등 무기를 들고 주재소 공격을 준비하는 일부 군중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향하여 공격을 감행하였고, 손에 든 무기로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을 부수었다. 창수주재소에서는 전날인 3월 18일 영해면, 병곡면 등 영덕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창수면에서도 이와 같은 시위가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있었으나, 400명이 넘는 군중이 몰려들어 공격하자 이를 당해낼 수 없었다. 주재소의 경찰들은 시위 군중을 향하여 해산을 요구했으나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이에 불응하고 더욱 격렬히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현설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봉에 나섰다. 시위 군중의 선봉에 서서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고, 앞장서서 창수주재소를 파괴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7시 경에 시위 군중은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판단하여 주재소에서 철수하였다가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 손괴죄, 가택 침입죄, 공문서 훼기, 각 기물 손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으나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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