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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奎

承奎

1860. 7. 4 ~ 19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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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承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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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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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독서숙
  • · 창신학교
  • · 의신여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마산부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60년 7월 4일 서울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남하(南荷)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부모님과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당시 부산(釜山)으로 피난하였다. 1875년 부친이 사망한 후 서울로 상경하여 한의사가 되어 경남 부산(釜山)에서 20여 년간 한의원을 운영하였다. 1903년경 경남 마산부(馬山府) 외서면(外西面) 상남리(上南里,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로 이주하였다. 이때 훗날 독립운동가이자 국학자가 되는 노산(蘆山) 이은상(李殷相)을 얻었다. 1904년 호주의 장로교 선교사인 아담슨(R. S. Adamson)의 전도를 받고 장로교로 개종하였고, 아담슨이 마산의 성호리(城湖里)에 설립한 성호리교회(城湖里敎會, 현 문창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였다. 교회의 신도들이 증가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1906년 5월 17일 교회 산하에 독서숙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호주 장로교의 지원과 기존의 독서숙을 바탕으로 1908년 사립 창신학교를 정식으로 설립하였다. 1913년에는 자매학교로 여학생 교육을 위한 의신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마산 지역의 장로교계 인사들과 창신학교·의신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을 중심으로 3월 21일 거행된 마산부의 만세시위를 적극 지원하였다. 마산 지역에서는 3·1운동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서울의 민족대표들과 긴밀한 연계 속에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2월 23일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을 경남 지역에서 추대하기 위해 서울에서 이갑성(李甲成)이 마산을 방문했을 때, 창신학교 교사 임학찬(任學瓚)에게 마산의 주요 인물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였다. 이갑성은 임학찬의 추천으로 상남교회(上南敎會) 장로인 이상소(李相召)를 만나 민족대표로 이름 올릴 것을 권유하였으나,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이갑성은 2월 26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배동석(裵東奭)을 마산으로 파견해 다시 이상소에게 권유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이후 배동석으로부터 손덕우(孫德宇)와 함께 민족대표로 권유를 받았지만,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갑성은 3월 1일 아침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광상(李宏祥)에게 독립선언서 200장을 이상소와 임학찬에게 보내게 하였으며 마산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3월 2일 마산에 도착한 이광상은 임학찬과 이상소에게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호응하여 마산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라고 권유하였다. 이에 동의한 이상소와 임학찬에게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내용을 전달받고 만세시위 계획에 적극 찬성하였다. 한편 마산을 방문했던 배동석도 의신학교 여교사인 박순천(朴順天, 당시 박명언)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이에 서울에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을 파악하게 된 이상소를 중심으로 장로교 지도자들, 창신학교·의신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더불어 만세시위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자 만세운동 준비를 위한 비밀회의의 장소 및 독립선언서의 등사와 태극기 제작 장소로 자택을 제공하였다. 이상소·임학찬·박순천 등은 만세시위의 거사일을 마산 시내 장이 서는 3월 21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창신학교·의신학교 교사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1일 오후 3시경 장터에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시간에 이상소·임학찬·박순천과 학생들은 장터의 한복판에 ‘대한독립’이라고 쓴 대형 깃발을 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공감한 3,000여 명의 주민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마산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마산의 중포병대대와 헌병분견소의 병력을 파견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탄압하며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이상소·임학찬 등 50여 명의 주도자들이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자 이들의 석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많은 학생이 풀려나도록 하였다. 1921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미국 워싱턴의 워싱턴군축회의(Washington Conference on Disarmament)에 제출한 「한국 인민은 글월을 태평양회의에 드림」이라는 서한에 마산 지역 대표로 서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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