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來
承來1855 ~ 1927. 9.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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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남하면(南下面) 양항리(梁項里)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9년 일제 측 문서에 따르면 당시 나이가 64세이므로 1855년 생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호는 숙관(肅觀)이다. 이황(李滉)의 유학적 이론을 계승·발전시킨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문하였고, 거창 지역의 대표적 유학자인 윤주하(尹胄夏)에게 곽종석(郭鍾錫)과 함께 배웠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부터 의병운동을 지지해 온 스승에게 영향을 받았고, 거창 지역에서 유림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파리장서에 서명자로 참여하였다. 1919년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대부분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 선언서의 작성 주체인 민족대표 33인은 대부분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참여하지 못한 유림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인이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독립불원서를 이완용(李完用) 등 친일파에게 작성하게 하고, 김윤식(金允植)이 대표로 서명해 일본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이는 유림에게 극도의 모욕감을 주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이에 유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재정립을 위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을 희망하는 한국인들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일제가 자행한 한국의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총 2,674자의 한자로 이루어진 장문의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김창숙(金昌淑)을 파리로 파견해, 이를 직접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국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김창숙이 여러 사정으로 직접 파리로 가지 못하게 되자, 이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이미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였다. 이러한 독립청원운동의 주도 세력은 곽종석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과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이었다. 영남지역에서는 한주 이진상의 학맥을 중심으로 곽종석이 문하의 제자들을 각 지역으로 파견해 유림들을 참여를 독려하였다. 곽종석의 연락을 받고 독립청원운동 참여를 결정한 스승으로부터 상세한 내용을 전달받고, 이에 동의하였으며 같은 문하의 윤인하(尹寅夏)·윤철수(尹哲洙) 등과 함께 파리장서에 137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이후 서명자 가운데 하나인 송회근(宋晦根)이 같은 해 4월 2일 경북 성주(星州)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혀, 일제 경찰에게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파리장서운동이 발각되었다. 이에 윤주하·곽종석 등 다른 서명자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곽종석·김복한 등을 제외한 다른 일반 서명자들과 더불어 미결수로 약 3개월 동안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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