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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復

承復

1884. 8. 14 ~ 1959.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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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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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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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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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4년 8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용상동(龍上洞) 출신이다.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1919년 당시 안동군 남선면(南先面) 현내동(縣內洞)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안동면 읍내 장터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안동면의 만세시위는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중순 계획되었는데, 3월 12일, 13일 만세운동 계획이 일제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3월 18일에는 수차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18일 아침 일찍 태극기를 가지고 안동면의 읍내 시장으로 가 있었다. 낮 12시경 김구현(金九鉉) 등의 신호에 따라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주도자들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들고 행진할 때 뒤따르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남문통(南門通)과 북문통을 오가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때 유동붕(柳東鵬)·송기식(宋基植) 등이 이끄는 시위대가 동문통으로 내려오면서 만나게 되었고, 이후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터 곳곳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주도자 1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1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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