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珣
承珣1868. 8. 17 ~ 1936. 12. 3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남원군 덕과면
- · 사매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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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8년 8월 17일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 덕과면(德果面) 고정리(高亭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3일 남원군 덕과면과 사매면(巳梅面)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덕과면과 사매면의 만세시위는 덕과면장 이석기(李奭器)의 주도로 식수기념일(植樹紀念日) 행사를 이용해 전개되었다. 이석기는 3월 31일 면서기 조동선(趙東先)과 구장 이병규(李秉圭)·이명원(李明源) 등을 만나, 4월 3일 면민이 다수 모이는 식수기념일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각 마을의 구장에게 집집마다 1명씩 반드시 참여하도록 통보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3일 오후 면내 신양리(新陽里) 뒷산의 도화곡(桃花谷)에서 식수행사를 마치고, 이석기 등을 비롯한 주민 800여 명이 모여서 탁주를 마셨다. 그리고 흥이 오르자 이석기·조동선·이풍기(李豊基)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주민들에게도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자 이풍기와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를 솔선해 전주(全州)와 남원을 잇는 신작로를 거쳐, 사매면 오신리(梧新里)에 위치한 오신헌병주재소를 향하여 이동하였다. 덕과면 사율리(沙栗里)를 지날 때 이석기가 오백룡(吳白龍)의 집 옥상으로 올라가, 미리 준비한 「우리 동포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낭독하고, 21장을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다시 시위대와 행진해 오신리 주재소 앞에 도착해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러한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남원헌병분대는 헌병을 출동시켜 만세시위를 주도한 이석기 등을 체포하면서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자 해산하고 귀가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5월 19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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