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淵
承淵1889. 4. 12 ~ 1956. 7.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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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6) 1889년 4월 12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계곡동(桂谷洞, 현 월곡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임동면 편항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유연성(柳淵成)·유동수(柳東洙)·유교희(柳敎熙)·박진선(朴晋先) 등의 계획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마을 주민을 시위에 동참시키기 위해 각자 담당 지역을 정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21일 아침 편항시장에 도착하여 장꾼과 주민들 사이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2시 유연성이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 중앙으로 나와 500여 명의 군중을 향해 만세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연설을 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러한 만세 선창에 따라 주도자를 비롯한 사람들과 더불어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소식을 접한 편항경찰관주재소 경찰들이 출동해 이를 저지하자, 주재소로 이동해 김치경(金致慶)·유연익(柳淵益)·김영팔(金永八)·박성경(朴聖景)·박춘근(朴春根)·송병영(宋炳榮)·이두선(李斗先)·신상백(辛尙伯) 등과 함께 주재소에 진입해 주재소 문서를 파기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의 일부와 추가로 합세한 유동수·유연성·문도석(文道錫)·유치득(柳致得)·문우석(文禹錫)·최도준(崔道俊)·김영창(金永唱) 등을 포함하여 주재소 공격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더불어 임동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청사와 기구 등을 파괴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의 검거 작전에 붙잡혀, 4월 17일 대구지검으로 이감되었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건조물손괴, 가택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2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를 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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