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暎漢
暎漢1878. 12. 29 ~ 1938. 2.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공주군 정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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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0) 1878년 12월 29일 충청남도 공주군(公州郡) 정안면(正安面) 운궁리(雲弓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공주군 정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정안면의 만세운동은 석송리(石松里)의 유림 이기한(李綺漢)이 주도하였는데,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같은 마을의 이병억(李秉億)과 협의하여 정안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주도 세력은 4월 1일 석송리 주민들을 모아놓고 만세시위에 나설 것을 호소하여, 이에 공감한 수십 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 군중은 대열을 갖추어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내촌리(內村里)를 거쳐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를 향해 행진하였다. 모범림의 묘목 식수 작업에 운궁리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동원되어 작업하고 있던 중, 이기한의 지휘로 석송리 방면으로부터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광정리로 행진하는 약 200명의 시위대를 목격하였다, 이들로부터 광정리의 면사무소로 가서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이니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최범성(崔範聲)·윤원식(尹元植)·이월성(李月星) 등과 함께 만세시위의 제안에 즉시 동의하여 모범림 식수 작업을 위해 준비한 지게와 삽 등을 휴대하고 만세시위대에 참여하였다.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광정리로 행진하였다. 만세시위대가 가는 길목마다 많은 주민들이 합세하여 광정리에 도착했을 때 참가자는 8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되었다. 이기한 등의 지휘에 따라 광정리의 시장으로 가서 일본인 거주지와 정미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삽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정안면의 순사주재소를 습격, 파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정안면의 격렬한 만세시위 보고를 받은 공주경찰서는 10여 명의 순사와 헌병들을 광정리로 파견했으나,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만세시위는 마무리되어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의 만세시위 참여자 색출 과정에서 붙잡혀서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9월 2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를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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