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榮鎬
榮鎬1899. 10. 17 ~ 1974. 5.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진천군 만승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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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9년 10월 17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만승면(萬升面, 현 광혜원면) 광혜원리(廣惠院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2일부터 3일까지 만승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승면의 만세운동은 대한제국 육군 참위(參尉) 출신이자 군대 강제 해산 뒤 의병에 투신했던 윤병한(尹炳漢)이 주도하였다. 윤병한은 만승면의 만세운동 조직을 위해 세력을 규합에 나섰고, 여기에 이상직(李相稷)·정관옥(鄭寬玉)·오은영(吳殷泳) 등과 합류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만세시위의 거사일은 4월 2일로 계획하였다. 4월 2일 오후 면유림(面有林)의 식목 작업으로 주민들이 모였는데, 이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자 주민들과 함께 동조하여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윤병한 등이 지휘하는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광혜원 시가지로 행진하여 신축 중인 헌병주재소로 가서 공사장을 파괴하였다. 그 후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면사무소에 이르러서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돌을 던져 유리창은 깨뜨리고, 곡괭이와 몽둥이로 장지문을 부수는 등 면사무소의 기물과 시설 파괴에 적극 가담하였다. 만세시위는 4월 3일에도 이어졌는데, 이날은 광혜원에 장이 섰다. 전날 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광혜원장터로 나가 장터에 온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이 동참으로 약 2,000명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발전하였다. 윤병한 등의 지휘에 따라 전날에 이어 재차 돌을 던져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헌병주재소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광혜원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일제 경찰이 발포 등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날은 다행히 몸을 피했으나 이튿날인 4월 4일 윤병한·정관옥·오은영 등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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