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五榮
五榮1898. 9. 4 ~ 1966. 1.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안성군 양성면
- · 원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9월 4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이중오(李重五)라는 이명이 있다. 1919년 4월 1일 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유석(李裕奭) 등이 주도하여 전개한 양성면과 원곡면 일대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원곡면과 양성면의 만세운동은 두 지역에서 별도로 전개되었다. 원곡면에서는 4월 1일 밤 8시경 이유석(李裕奭)·최은식(崔殷植)·홍창섭(洪昌燮)·이근수(李根洙) 등의 주도로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칠곡리·외가천리·내가천리 등 원곡면내의 여러 마을에서 모인 1,000명의 주민들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원곡면과 양성면을 가로지르는 고개에서 이유석·최은식·홍창섭 등이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였고, 양성면내에 있는 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 등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돌과 몽둥이 등을 지참한 시위대는 구한국기를 앞세우고 양성면 동항리로 이동하였다. 한편 양성면민 수백 명은 밤 9시경 동항리의 양성경찰관주재소(陽城警察官駐在所)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9시 50분경 양성면민들이 시위를 마치고 해산해 돌아가려고 할 때 원곡면의 시위대가 합류하였고, 시위 군중은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오후 10시경 주재소 앞에 도착하자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주재소와 숙직실을 불태웠다. 다시 양성우편소(陽城郵便所)로 가서 그 곳의 기물과 건물을 파괴·방화하고, 일본인 소도사토(外里與手)가 경영하는 잡화점과 일본인 고리대금업자 다카(隆秀知)의 집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괴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국화⋮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