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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完鎬

完鎬

1896. 6. 25 ~ 196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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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完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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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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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6월 2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칠곡리(七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성봉(李先鳳)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오후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등에게 밤에 원곡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다는 계획을 전달받고, 참여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날 저녁 면사무소에 앞에 집결한 1,000여 명의 원곡면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갈수록 만세시위의 분위기가 격화되었고, 주도자들이 시위대에게 일제의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 등이 위치한 양성면으로 향하자고 외쳤다. 이에 호응하여 만세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이날 밤 양성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었다. 오후 9시경 양성 경찰주재소 앞에 수백 명의 주민들이 집결하여 일제 경찰을 향해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었다. 양성면의 만세시위대와 곧바로 합류하여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2,000여 명으로 확대된 만세시위대와 함께 이유석·홍창섭 등의 지휘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우선 일제의 양성경찰주재소를 공격하였다. 만세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이홍기(李洪基) 등과 함께 의자 등 주재소의 집기들을 불 속에 던져 태워버렸다. 다음 목표인 양성우편소로 행진하여 돌을 던지고, 우편소의 기물을 파괴하고 소각시켰다. 이후 평소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았던 일본인들의 주택과 상점 등으로 행진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는 등 4월 2일 새벽까지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새벽 4시 경 귀환하여 이유석·홍창섭 등의 지휘에 따라 원곡면 면사무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의 마지막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해산하였다. 4월 3일 일제는 조선주차군 제79연대 30여 명의 병력을 원곡과 양성으로 파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색출을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유석 등과 함께 이른바 내란죄로 고등법원의 재판에 회부되었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3년(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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