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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成春

成春

1895. 4. 20 ~ 1949.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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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成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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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옥구농민조합소작쟁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95년 4월 20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현 군산시)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옥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에서 소작쟁의를 전개하였다. 1927년 옥구군 서수면에서는 높은 소작료로 인한 일본인 지주의 횡포가 심각하였다. 이에 소작인의 생존권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해 10월 2일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 등이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瑞穗支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신문관(申文官)·정영운(鄭永云)·최은엽(崔銀燁) 등과 함께 회원 모집에 주력하였으며, 그 결과 회원 수가 200여 명이 되었다. 이러한 옥구농민조합에 가입하여 조합원들과 함께 식민농업회사 이엽사농장과 이를 비호하는 일제에 대항하였다. 이엽사농장은 일본인 지주가 설립한 전형적인 식민농업회사였다. 본점을 전주(全州)에 두고 전북을 중심으로 많은 땅을 확보하여 1,700여 명의 한국 소작인들에게 경작시키고 있었다. 1927년 서수면의 이엽사농장이 소작인들에게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였다. 이는 당시 평균 소작료인 45%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장태성과 김행규(金杏奎) 등이 농장의 일본 지배인인 사이토 신이치(齊藤信一)에게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지부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날 저녁 무렵 이진섭(李鎭燮)은 장태성이 군산경찰서로 이송되기 위해 임피(臨陂) 경찰관주재소에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이때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임피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돌아오는 도중 서수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그곳을 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주재소 습격과 구금자 탈환 과정에서 조합원 및 농민 8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미결기간 중 3개월여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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