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雲善
雲善188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태원
- · 조경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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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대화면(大和面) 북창리(北倉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9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김태원(金泰元) 의병부대, 1909년 조경환(曺京煥)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2월 전남 장성(長城)·담양(潭陽)·영광(靈光)·함평(咸平)·광주(光州) 등지에서 활약하던 김태원 의병부대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4월 광주 어등산(於登山)에서 일본군과의 교전 중에 김태원이 사망하였다. 유격전술에 능하였던 김태원 의병부대는 김태원이 죽고 난 이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이후 김태원 의병부대의 선봉장을 따라 조경환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조경환은 김태원 밑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의병 지휘자로, 박도경(朴道京)·전해산(全海山)·심남일(沈南一) 등과 마찬가지로 평민 출신 의병장이었다. 김태원 의병부대의 유격전식 전투 방식을 따라 종종 연합하면서, 광주·장성 등에서 유격전을 이어나갔다. 한편, 일제는 이른바 ‘남한대토벌’을 시작하면서 1908년 12월 15일 영산포헌병분대장의 지휘 아래 8개 부대를, 광주수비대(光州守備隊)에서는 3개 부대를 각각 편성시켜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동시 출동시켰다. 이때 조경환 부대는 1909년 1월 10일 광주 운수동(雲水洞)의 어등산 산지에서 일제의 증강 파병된 광주수비대의 기습을 받아 2시간 동안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조경환을 비롯한 의병 20명은 사망하였고, 남은 동지 10명과 함께 붙잡혀 광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1909년 5월 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 폭동죄로 유형(流刑)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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