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益洙
益洙1888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동신(김승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전라남도 흥양군(興陽郡, 현 고흥군) 다압면(多鴨面) 관동리(官洞里) 출신이다. 190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22세로 기록되어 있어,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음)3월 김동신(金東臣) 의병부대에 가담한 이후, 사역(使役, 일꾼)으로 항일활동을 보좌하였다. 김동신(김승지)은 충남 회덕(懷德) 출신으로, 일찍이 1906년 홍주(洪州)에서 기병한 민종식(閔宗植)의 선봉장(先鋒將)으로 활약하였다. 1907년 8월 1일 군대해산 이후 김동신은 다시 의병을 일으키고, 전라도에서 세력을 모았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0일 80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북 순창(淳昌)의 우편취급소와 경무고문분파소(警務顧問分派所)를 습격해 점령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김동신 의병부대의 병력은 적게는 100명 전후에서 많게는 1,000여 명까지 되었다. 김동신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지리산을 근거로 유격전을 펼치며, 1907년부터 1908년까지 일본군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또한 인근의 고광순(高光洵) 의병부대 등과 연대하며 연합전선을 발전시켰고, 1909년 초반에는 호남동의단(湖南同義團)이라는 연합전선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유격부대로서 상당히 큰 규모의 병력을 가진 김동신 의병부대에서 사역으로 의병장을 보좌하고 의복 등을 챙기면서 다른 의병들의 항일활동을 돕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20여 명과 함께 경남 함양군(咸陽郡)과 전북 운봉군(雲峰郡, 현 남원시 운봉읍)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1908년 말 붙잡혔다. 1908년 12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1909년 2월 18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옥고를 겪다가, 1910년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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