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少悌
少悌1875. 11. 7 ~ 1919. 4.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시위 참가
- · 일본 헌병의 총격을 받고 현장 순국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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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5년 11월 7일 충청남도 천안(天安)에서 태어났다. 유중권(柳重權)과 결혼하여 충남 목천군(木川郡) 이동면(二東面) 지령리(芝靈里, 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 거주하였다. 남편 유중권은 청주 한씨와 결혼하여 1897년 딸 유계출(柳季出)을 낳았으나, 첫째 부인은 출산 후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유중권과 혼인하여 유우석(柳愚錫)·유관순(柳寬順)·유인석(柳仁錫)·유관석(柳寬錫)을 낳았다. 유중권은 천안에 설립된 흥호학교(興湖學校)의 운영에 참여하였고 장남 유우석은 공주 영명학교에서, 둘째 딸 유관순은 서울 이화학당에서 수학하도록 하는 등 신식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1919년 3월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유관순은 만세운동으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지자 독립선언서를 숨겨 고향으로 돌아왔고, 부모와 마을 어른들을 만나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였다. 4월 1일 갈전면(葛田面) 아우내[(竝川)] 장터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남편 유중권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저항했으나 유중권이 먼저 병천주재소 헌병의 총검에 옆구리를 베인 후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였고, 이어서 이소제 역시 헌병의 발포로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딸 유관순은 이날 만세운동에서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고 본인 역시 시위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중에서 고초를 겪던 중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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