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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錫坤

錫坤

미상 ~ 1932.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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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錫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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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국내항일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적색노동조합(함흥)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와 출생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930년 함경남도 함흥(咸興)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함흥은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공업화 정책의 중심지로서 금속·화학 등 중화학 공업 관련된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회사 자본의 대부분을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었고, 경영진과 상급 기술자도 대부분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들은 민족 차별뿐만 아니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노동할 것을 강요받았다. 1930년 함흥에서 김호반(金鎬盤)으로부터 노동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받았다. 김호반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태평양노동조합(太平洋勞動組合) 비서부의 한국 담당 책임자였다. 김호반의 권유로 함흥 지역에 적색노동조합(赤色勞動組合)을 조직하기 위한 함흥위원회(咸興委員會)를 결성한 후 함흥위원회 화학부와 자유노동자부에서 활동하면서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이들을 규합하여 세력화함으로써 일제 당국과 일본인 자본가들에게 대항하여 한국인 노동자의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노출되어 동료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 사건을 ‘제1차 태평양노조 사건’이라고 한다. 이후 약 1년간 함흥형무소에서서 고초를 겪던 중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재판을 받지 못한 채 1932년 8월 8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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