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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泰華

泰華

미상 ~ 1925.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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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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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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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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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8)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간동면(看東面) 상리(上里) 출신이다.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 등은 확인할 수 없다. 1925년 평양경찰서 순사부장 구마가이 히로시(熊谷弘)를 처단하였다. 1924년 가을 남만주로 들어가다가 신의주경찰서에 붙잡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도박 상습범이라는 죄로 벌금 50원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의성단장(義成團長) 편강렬(片康烈)과 약 50일 동안 같은 감방에서 생활하며 사상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출옥한 후에는 편강렬에게 자기 돈으로 여러 번 차입(差入)을 시켜주었다. 1925년 2월 9일 오전 3시경 평남 평양부(平壤府) 밖 선교리(船橋里)의 중국인 우서평(于書平)이 운영하는 요리점 동성원(同盛園)에서 평양경찰서 순사부장 구마가이 히로시와 순사 유카와(湯淺勇吉)·박영하(朴永河) 등 세 사람과 맞닥뜨려 격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구마가이를 죽이고 유카와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자신도 중상을 입은 채로 박영하에게 붙잡혔다. 붙잡힌 뒤에 “나는 나 일개인의 구복(口腹)이나 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동포를 위하여 할 수 없이 몸을 바치고 이러한 일을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소지하고 있던 명함 뒷면에는 “오늘 동포를 위하여 금전을 절취할 것, 이것을 성공하기 위하여 생명을 바칠 것, 오늘은 나의 생명을 하느님께 바칠지라도 목적을 달성하고 말 것, 부모에게 효도할 것” 등의 문구가 자필로 적혀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1925년 2월 16일 탈주하였으나 하루 만에 다시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같은 달 20일 이른바 강도살인죄·강도상인죄로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그해 5월 4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다시 사형을 받았다. 결국 1925년 9월 3일 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그해 10월 7일 평양형무소에서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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