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達俊
達俊1873 ~ 1919. 8.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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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 대호지면) 송전리(松田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9년 당시 46세인 것으로 보아 1873년생으로 추정된다. 천도교도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린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에서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마을 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해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로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 집에 한 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만세운동 거사일인 4월 4일 아침 천도교계의 인사들과 함께 결의를 다지며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집결한 600여 명의 주민들에게 면장 이인정은 오늘의 목적은 도로보수가 아니라 만세운동을 전개하려는 것이니 모두 참여해 달라고 하니 대다수의 주민들이 동의하여 합류하였다. 이에 시위대열의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시위대열이 천의장터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동참하여 규모가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장터의 한복판에 대형 태극기를 세우고 조선 독립에 대한 연설회를 개최한 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 순사들이 만세시위대의 주민들이 소지하고 있던 태극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강압적으로 압수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천도교의 동지들과 함께 순사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파괴하고, 일제 경찰들을 구타하여 이들이 소지한 무기를 탈취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대호지면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까지 연결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대호지면으로 홍성헌병수비대를 급파하여 만세시위를 탄압하고, 다음날인 4월 5일부터 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체포 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주민들이 일제 헌병에 체포, 연행되었다. 그럼에도 대호지면 내외 주변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만세시위가 계속되었다. 천의장터 만세시위 이후 일제 헌병의 체포를 피하자마자, 고향 마을인 송전리에서 백남덕, 이동하 등의 천도교계 인사들과 함께 4월 8일 새로운 만세시위를 조직하였다. 송전리 주민 300여 명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송전리 곳곳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과 충돌하였다. 일제 경찰의 무력에 의해 불과 300여 명 남짓의 만세시위대는 강제 해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의 주도 인물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일제 경찰의 조사과정에서 4월 4일의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4월 8일 송전리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1919년 6월 17일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공주감옥에 갇혀 조사받는 과정에서 일제 검경의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재판이 열리기도 전인 1919년 8월 12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일제는 사망 원인을 병사로 위장하기 위해 유해를 유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함께 참여했던 남상은(南相殷)에게 입회인으로 서명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후일 출옥한 남상은의 폭로로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유족들은 끝내 유해를 찾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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