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鳳鶴
鳳鶴1896. 8. 12 ~ 1974. 4.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영일군 포항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9) 1896년 8월 12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흥해면(興海面) 곡성동(谷城洞, 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 곡성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명이 다른 이봉학(李鳳學)이다. 이후 영일군 포항면(浦項面) 포항동(浦項洞, 현 포항시 북구 중앙동)으로 이사하였다. 1919년 3월 9~11일 영일군 포항면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포항면에서의 만세시위는 예수교 학교 교사인 송문수(宋文壽)가 주도적으로 계획하였고, 이기춘(李起春)·장운환(張雲煥)과 더불어 동참하였다. 3월 9일 송문수로부터 전국의 만세운동 상황과 국내 정세, 3월 8일 대구에서의 만세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송문수·이기춘·장운환과 함께 3월 11일 포항면에서 대대적으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고, 원전동(院前洞)시장을 거사 장소로 정하였다. 이기춘과 함께 3월 10일과 11일 같은 마을 사람 김동은(金東殷) 등 예수교 교인들에게 송문수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해,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거사 당일 ‘독립만세’라고 쓴 첩지(貼紙)가 면내에 붙으면서 만세시위 계획이 발각되었다. 그리고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만세시위는 실행 직전에 무산되었다. 이러한 포항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는 동안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정세가 불안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일제 경찰과 헌병을 파견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막고, 재향군인 등을 동원해 경계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10일 오후 12시 북본정 야소교 학교에 60여 명이 모이자, 급보를 받고 출동한 일제 군경에게 해산당하였다. 11일에는 밤 10시 야소교학교 서쪽 언덕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바로 제지당하였다. 이처럼 송문수·이기춘·장운환과 함께 계획한 만세시위를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였지만, 더 큰 기폭제가 되어 포항면에서의 만세시위가 이어지게 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9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