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士範
士範1876. 7. 20 ~ 1943. 2.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양주군 백석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76년 7월 20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시둔면(柴屯面, 현 의정부시) 하서리(下西里)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이후 백석면(白石面, 현 백석읍) 연곡리(蓮谷里)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27일부터 3월 28일까지 안종규(安鍾奎)·안종태(安鐘泰)·김대현(金大鉉)·조필선(趙弼善) 등과 함께 양주군 백석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양주군 백석면 만세시위는 연곡리의 구장 안종규와 친형 안종태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3월 27일 밤, 안종규는 구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주민들을 소집하였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모이자, 안종태가 주민들 앞으로 나와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독립해야만 살 수 있다”고 연설하고, 함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안종태의 연설에 크게 공감하여 김대현·조필선 등과 함께 운동 동지로 적극적으로 결합하였다. 안종태·안종규 등과 함께 연곡리 주민들을 규합하여 이날 밤 늦도록 연곡리에서 ‘독립만세’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다음날에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3월 28일 안종규·안종태·김대현·조필선 등과 함께 오산리(梧山里) 대들벌에서 제2차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날 대들벌에 모인 600여 명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시위 대열을 갖추고, 동지들과 함께 만세시위대를 지휘하여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백석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백석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다.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발동으로서의 만세시위에 대한 유죄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도 이유 없음으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