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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살눔

1886. 8. 7 ~ 1948.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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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살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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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金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김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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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김포군 월곶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6년 8월 7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고양리(高陽里)에서 출생했다. 살노미(撒路美)와 경덕이라는 이명이 있다. 기독교인으로 성서학교(聖書學校)에 재학 중인 학생이면서 통진교회(通津敎會)의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22일 같은 마을의 성태영(成泰永)과 군하리(郡下里)의 백일환(白日煥), 고정리(高亭里)의 최우석(崔禹錫) 등과 함께 김포군 월곶면 최초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포군 월곶면에서는 3월 22일의 만세시위 이래 4월 5일까지 여러 차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그 최초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월곶면에서도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에 동참할 목적으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성태영·백일환 등과 논의하여 3월 22일은 군하리 장터 장날이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모일 것이니, 이를 기회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군하리 장날인 3월 22일 성태영·백일환 등과 함께 장터로 나가 “조선독립을 원하는 자는 공자묘(孔子廟, 鄕校)로 모이라”고 권유하니, 독립이라는 취지에 공감한 400여 명의 주민들이 공자묘로 집결하였다. 이에 성태영·백일환·최우석 등과 함께 태극기를 배포하여 만세시위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400여 명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시위대열을 갖추어 선두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와 주재소, 보통학교 등 일제의 식민통치기구를 향해 행진하며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월곶면에서 수백명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 경찰 야마다 시게히로(山田重洋)가 만세시위를 가로막으며 주도자인 성태영을 체포하려 하였다. 만세시위대는 야마다의 총과 칼을 빼앗고 그를 구타하였다. 성태영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하려는 일제 경찰의 행동에 분노하여 시위대를 지휘하여 월곶면의 순사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해서 일제 경찰과 면서기들을 구타하고, 그들을 압박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게 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7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즉각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8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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