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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參鉉

鉉

1877. 9. 17 ~ 195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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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參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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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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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안동군 예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77년 9월 17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분천동(汾川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1919년 3월 17일 안동군 예안면(禮安面) 장날에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군 예산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한 인물은 예안면장 신상면(申相冕)이었다. 신상면은 3월 11일 이시교(李時敎)·이광호(李洸鎬)·이중원(李中元) 등과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 모여 만세시위를 결의하고, 3월 17일 예안면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신상면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 외에도 조수인(趙修仁) 등의 유림들과 예안 만촌교회 기독교도들도 17일에 만세시위를 펼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거사 당일인 3월 17일 장터에서 일을 보던 중 갑자기 ‘독립만세’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예안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서 20~30여 명의 군중들이 일본이 세운 대전기념비(大典紀念碑)를 쓰러뜨린 후 ‘독립만세’를 연호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장터에도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세 곳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시위대가 장터를 누비며 ‘독립만세’를 소리쳤고, 유림과 기독교도들도 합류하면서 대규모 만세시위로 발전하였다. 이에 망설임 없이 시위대에 동참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이동봉(李東鳳)을 선두로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그러나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수비대까지 동원하여 시위를 저지하였고 이 과정에서 주도 인물 15명이 체포되면서 군중과 함께 흩어지게 되었다. 만세시위가 중단된 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구속자 석방을 위하여 다시 모이게 되었다. 오후 6시경 다른 1,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또다시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 이른 시위대는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주재소 진입을 시도하였고, 일제 경찰의 저지에 투석전을 벌이며 주재소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시위대는 돌과 기왓장을 던져 주재소 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구속자를 탈환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그러나 격렬해진 시위에 일제 경찰도 더 많은 수비대를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공포를 쏘면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다른 25명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고 만세시위도 끝나게 되었다. 이후 모진 조사를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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