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龜
相龜1888. 10. 1 ~ 1958. 5. 2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울진군 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8년 10월 1일 강원도 삼척군(三陟郡) 원덕면(遠德面) 월천리(月川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울진군(蔚珍郡, 현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北面) 부구리(富邱里)로 이주하였으며, 이명으로 이봉의(李鳳儀)를 사용하였다.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부구리 흥부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 만세운동은 이틀 전인 4월 11일에 일어난 원남면(遠南面) 매화리(梅花里) 장터 만세운동과 더불어 울진군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이었다. 고목리(古木里)의 전병항(田炳恒)과 남병표(南炳豹)가 만세시위를 주도하자, 김광수(金光壽)·박양래(朴楊來)·황종석(黃宗錫) 등 부구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참하였다. 전병항·남병표·김광수 등은 부구리 흥부장터를 거사 장소로 정하고, 장날인 4월 13일에 거사를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전병항과 남병표는 시위에 쓰일 태극기를 직접 만들어 준비하였다. 4월 13일 거사 당일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흥부장터로 향하였다. 장터에는 장사꾼과 주민들로 붐볐고 장터 안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가 거행될 때까지 기다렸다. 오후 1시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의 만세소리에 장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연이어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운동 소식을 알게 된 일제 경찰은 현장에 출동하여 주도 인물 4명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총칼을 앞세워 군중들을 강제로 해산시켜 일시적으로 다른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오후 8시 다른 군중과 함께 다시 한 번 장터에 모여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장 남쪽 입구에서 중앙으로 몰려가며 시위를 전개하였고, 일제 경찰과 헌병들이 무력으로 제지하였으나 군중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밤 12시 경까지 시위를 이어갔으며, 이 무렵 일제 경찰과 시위 군중 사이에서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헌병 보조원이 총을 발사하였고 총소리에 군중은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 참여자 체포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