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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東

相東

1864. 11. 4 ~ 195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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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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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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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4년 11월 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용상동(龍上洞) 임청각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석보면(石保面) 포산동(葡山洞)으로 이주하였다.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字)는 건초(健初), 호는 만진(晩眞), 이명은 이용희(李龍羲)였다. 독립운동가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의 동생이다. 1919년 3월 13일 안동군 안동면 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기독교도로,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소식을 듣고 포산동에 칩거하였다. 조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탄된 것이 이완용(李完用) 무리의 사기에 의해서라고 생각하며,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기를 항상 기원하였다. 그러다 1919년 신문을 통하여 윌슨의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에 대하여 알게 되고, 고종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전국적인 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자신도 만세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거사 하루 전인 3월 12일, 봉화군(奉化郡)으로 전도를 가기 위하여 자신의 집을 출발하면서 안동을 경유하였다. 다음날 안동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홀로 준비하였다. 시위에 쓰일 격문(檄文) 1장과 ‘대한민국만세’ 라고 쓴 태극기 1장을 만들었다. 격문에는 “오늘은 인심(人心) 천의(天意)를 명백하게 표시하는 정당한 기회이다. 우리 동포들은 괴로운 세상에 생활하여 무슨 영화로움이 있겠는가, 눈을 들어 독립대한국 국기를 보라”고 썼다. 거사 당일인 13일, 격문과 태극기를 몰래 숨기고 안동면 장터로 향하였다. 오후 5시 30분 경 장터 안 공신상회(共信商會, 현 신한은행 앞 성결교회 입구 추정) 도로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소리에 장터에 있던 일부 장꾼들이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가 확대되려고 하였다. 그러나 만세소리에 급히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바로 붙잡혔고 태극기와 격문은 모두 압수당하였다. 체포되어 가는 차 위에서도 “상제(上帝)의 뜻과 가호에 의해 한국은 10일을 넘기지 않고 독립이 될 것”이라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러한 만세시위 시도는 이후 안동군의 만세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1919년 3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곧이어 상고하였지만, 그해 5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이듬해인 1920년 4월 26 영친왕의 결혼을 기념한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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