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栢
相栢1886. 8. 15 ~ 1965. 9.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칠곡군 인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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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8월 15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인동면(仁同面) 진평동(眞坪洞, 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인동교회 목사였다. 그 해 3월 12일부터 14일에 걸쳐 벌어진 칠곡군 인동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인동면 만세운동은 3월 7일 대구부(大邱府) 신정(新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에 살던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 이영식(李永植)이 독립선언서 20장을 가지고 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영식은 이내성(李乃成)과 함께 인동교회로 찾아와, 독립선언서를 내보이며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평소 한국의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하기를 희망하고 있었기에 인동면 진평동 만세시위를 결심하였다. 이후 자신의 집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독립선언서를 보이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3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집에서 선언서를 필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12일 필사한 독립선언서를 인동면 곳곳에 붙이게 하였고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날 오후 8시 마을 뒷산 기슭에 200여 명의 주민 앞에서 민족자결의 취지를 설명하고 한국이 독립할 것이라고 연설하였다. 그리고 이내성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으며, 소식을 듣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시위대는 해산되었다. 이때 다른 주도인물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러나 인동면 만세시위는 3월 14일까지 계속해서 지속되었다. 3일에 걸친 만세운동의 결과 33명이 체포되었고, 22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1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로 감형받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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