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相召
相召1860. 12. 29 ~ 1942. 5.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마산부 마산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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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2) 1860년 12월 29일 경상북도 대구(大邱) 출신이다. 이후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 만정(萬町,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면서, 장로교계 기독교회인 마산 상남교회(上南敎會) 장로로 활동하였다. 그 해 3월 상남교회 산하의 창신학교(昌信學校) 교사 임학찬(任學瓚) 등과 함께 마산 지역 만세시위 준비를 주도하였다. 마산 만세운동은 장로교계 기독교 인물들과 그 산하의 창신학교·의신학교(義信學校)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주도하였는데, 3월 1일 만세운동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서울의 민족대표들과 긴밀한 연계 속에서 계획되었다. 2월 23일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인 이갑성(李甲成)과 2월 26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배동석(裵東奭)이 마산에 찾아와 지역에서 민족대표에 참여해줄 것과 만세운동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시일의 촉박함과 민족대표 참여의 중대성으로 인해 쉽사리 나서는 지역 인사가 없었다. 결국 마산 지역에서 민족대표 참여는 무산되었다. 3월 2일 마산에 도착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이굉상(李宏祥)로부터 임학찬과 함께 독립선언서 200장을 수령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임학찬과 협의하여 이형재(李瀅宰)·김용환(金容煥)을 통해 마산 지역 곳곳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도록 하였다. 다른 기독교 지역인사들과 함께 마산 시내에 장터가 열리는 3월 21일로 만세시위 거사일을 정하였다. 이들은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3월 21일 오후 3시 마산 장터 한복판에 동지들과 함께 큰 글씨로 ‘대한독립’이라고 쓴 대형 깃발을 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공감한 3,000여 명의 주민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치며 행진하였다. 마산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일제는 마산의 중포병대대와 헌병분견소 병력을 파견하여 무력탄압으로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임학찬 등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일제 헌병대의 조사를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7월에 집행유예 3년(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에 산입)을 받고 풀려났다. 8개월에 걸친 모진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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