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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壽奉

壽奉

1897. 7. 3 ~ 194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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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壽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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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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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안성군 일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897년 7월 3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현 안성시) 일죽면(一竹面) 주천리(注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한공(朴漢洪)을 사용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학생이었는데, 재학 중이었던 학교명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4월 2일 안성군 일죽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일죽면 만세운동은 4월 1일 안성군의 주요 지역에서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등 일제의 식민통치기구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매우 격렬하고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는데, 이로부터 영향받아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특히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과거 죽산군(竹山郡)에 함께 편제되어 지역적으로 친밀감이 높고, 바로 이웃한 지역이었던 이죽면(二竹面) 만세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4월 1일 이죽면에서는 도로개수 공사의 부역에 나온 많은 군중들이 이죽면 면사무소와 죽산주재소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이들은 다음날인 4월 2일에도 1,0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죽산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이처럼 이죽면에서 만세시위가 거세게 일어나자, 이에 고무된 송산리(松山里)의 오순경(吳順景), 산북리(山北里)의 조성행(趙聖行)·유영창(柳永昌)·박병덕(朴秉德) 등 평소 나라의 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일죽면의 유지들도 전국적인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결의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오순경 등은 동지들과 논의를 통해 안성군 전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함께 행동한다는 생각에서 거사일을 1919년 4월 2일로 결정하여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4월 2일 저녁 무렵부터 오순경 등은 약 200여 명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일죽면 면사무소와 주천리에 위치한 일제 경찰의 주재소로 앞에서 큰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일죽면에서도 만세시위가 전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울분과 식민지 조선의 독립에 대한 생각을 교류하고 있던 같은 마을의 주민 석동성(石東聲)과 함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분위기가 고조되어 주민들이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 공격하기 시작하자, 석동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김완석(金完錫)으로부터 넘겨받은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대의 주재소 습격을 독려하였다. 만세시위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6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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