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容三
容三1893. 4. 28 ~ 1946. 1.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악군 안악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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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3년 4월 28일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대원면(大遠面) 가양리(可陽里)에서 태어났다. 개신교인이며, 1917년 안악군에 위치한 숭덕학교(崇德學校)의 학교장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28일 안악군 안악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황해도 안악군 만세시위는 다른 지역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이는 일제 군경이 안악의거와 105인 사건의 가담자들을 요시찰 인물로 정해 놓고 감시를 강화하였고, 동시에 안악읍의 예수교회 목사 염도선(廉道善)과 장로 함덕희(咸德羲) 및 개신교인 차응두(車應斗)·최제풍(崔濟豊) 등에 대해 사전 검속을 단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3월 11일 안악군 은홍면(銀紅面) 온정시장(溫井市場)에서 개신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500~600여 명의 시위대가 안악군에서 최초로 만세시위를 거행하였다. 이러한 일제 관헌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안악면 개신교인들은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준비하였고, 대부분 대원면(大遠面) 가양리(可陽里)의 예수교회 소속 개신교인들이 담당하였다. 이때 가양리 예수교회의 교인으로서 만세시위 준비를 주도하였다. 그러면서 교인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였고, 동네 사람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28일 정오 무렵 안악면으로 가서 읍내에 있는 교회에서 종을 쳤다.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와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시위대를 이끌며 안악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군경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해 임승문(林承文)·임동균(林東均) 등이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위대의 만세행렬이 계속 이어지자 일제 군경은 오후 3시 무렵 강제로 연행했던 안신학교(安信學校) 교사 양언경(梁彥卿)을 비롯한 25명을 풀어주었고, 이후 만세시위는 진정되었다. 안악군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일제 군경의 검거를 피해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으로 활동하다가, 일제 관헌에게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또한 아들 2명을 중국으로 보내 광복군으로 활약하게 하였다. 1926년 5월에는 안악군에서 나쁜 풍습을 없애고 인격 양성을 목적으로 교동교풍회(橋洞矯風會)를 창립하고,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1928년 5월에는 동양척식회사의 안악지역 대노전(大蘆田) 착목을 반대하기 위한 집행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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