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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容儀

容儀

1888. 7. 9 ~ 1943.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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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容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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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실(任實)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실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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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임실군 둔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8년 7월 9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용정리(龍井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 일대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임실군 둔남면 일대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경 둔남면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시작되었다. 이때 이기송(李起松)·양태환(梁太煥)·이영의(李英儀)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이번 파리 강화회의에서 조선 독립이 논의되고 있으니 2,000만 민중이 협력하여 크게 만세를 외쳐 강화회의의 주의(主義)를 끌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고,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면서 둔남면 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그리고 시장 부근에 살던 일본인들의 가옥과 상점 등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각종 기물을 파손하는 등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기송을 비롯한 주도자들이 체포되자, 시위대와 더불어 주재소로 몰려가 일본인 순사 무라이(村井邑次)와 조선인 순사보인 고택기(高宅基)를 구타하였다. 그리고 유치장의 문을 부수고, 연행된 사람들을 구출하였다. 그러나 남원(南原)의 헌병분대와 임실경찰서에서 급파된 일제 군경들이 도착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면서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이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30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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