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赫
承赫1885. 9. 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관련 사건
- · 성천군 성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1) 1885년 9월 1일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통선면(通仙面) 용담리(龍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면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성천군 만세운동은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수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성천군 최초의 만세시위는 3월 4일이었다. 이날의 시위는 천도교 성천교구장 이돈하(李燉夏)가 평양(平壤)의 대교구장회의에 참석하였다가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오면서 시작되었다. 3월 4일 오전 10시 수백여 명의 천도교도가 모여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는 한편,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어 성천면 내에 위치한 헌병분대를 공격하여 집기를 부수고, 헌병분대장을 구타하여 처단하였다.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에게 직접 총을 발포하여 강경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3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이어 다음날인 3월 5일에도 시위가 계속되었다. 이에 일제는 보병 24명을 증원하여 헌병과 함께 시위대를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하였다. 이어 3월 7일에도 시위대가 두 차례에 걸쳐 성천면(成川面) 흥덕리(興德里)에 위치한 성천헌병분대를 공격하였다. 3월 31일에는 삼흥면(三興面) 일대에서 100여 명이 만세시위를 진행하다 체포되기도 하였다. 다음날인 4월 1일에도 삼흥면·능중면(陵中面) 일대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4월 3일에는 능중면 융중리(隆中里., 현 회창군 양춘리)에서 400명의 천도교인들이 시위를 일으켜 보병 15명이 출동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성천군 일대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평양지방법원 판결을 거쳐 1919년 5월 3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