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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重赫

重赫

1862. 12. 8 ~ 194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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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重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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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坡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파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노농회(勞農會)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구국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2년 (음)12월 8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탄현면(炭縣面) 갈현리(葛峴里)에서 아버지 이용립(李容立)과 어머니 창원황씨(昌原黃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자는 사첨(士瞻)이다. 전통적인 양반 가정에서 자랐고,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887년 진사에 합격하고 1889년 신정왕후산릉(神貞王后山陵) 참봉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감옥서(監獄署) 간수장, 농상공부 주사를 거쳐 1901년 한성부재판소 주사에 임명되었다. 1902년 법부 주사, 1904년 평리원 주사 등을 역임하고 1906년 강원도재판소 검사로 승진하였다. 1907년 8월 전라북도재판소 검사, 9월 경기재판소 검사를 지내고, 1908년 함흥지방재판소 판사가 되었다. 1910년 조선총독부 원산구재판소 판사에 임명되었고, 1911년 재령구재판소 판사로 전근되었다가 1912년 3월 의원면직하였다. 같은 해 5월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에 변호사 등록을 하고 개업하였다.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당주동에 변호사사무실을 열었다. 1920년 대동단(大同團) 사건 변호를 시작으로 항일독립운동 사건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20년 (음)7월 서울에서 윤철(尹喆) 등과 함께 소농민 단체인 노농회(勞農會)를 조직하여 군자금 수합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21년 3월에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 명의의 독립운동자금 공채 액면 12,200원을 어대선(魚大善)으로부터 인수받아 윤철에게 넘겨주었다. 그 후 전국에 걸쳐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하다가 1921년 4월 21일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은 일명 ‘구국단(救國團) 사건’으로 명명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2년 3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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