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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呂鐘

鐘

187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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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呂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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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이천(伊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이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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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이천군 영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영양면(榮壤面, 현 낙양면) 내락리(內洛里) 출신이다. 일제 측 판결문에 따르면 1870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천도교인으로, 4월 4일과 5일 이천군 영양면 지석리(支石里)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김응제(金應濟)·김이순(金利淳)·이두영(李斗榮)과 강원도 평강군(平康郡)의 김병하(金炳河)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주도 인물들은 모두 천도교인들로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천도교 대표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소식을 듣고 교인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4월 4일 김응제 집에 모여 태극기 2장과 선전문을 만들어 이두영과 김혁근(金赫根)에게 주고 지석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도록 하였다. 다른 주도 인물들과 함께 내락리와 지하리(支下里)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였다. 오후 3시 이두영과 김혁근이 중심이 되어 지석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후 밤 10시 김응제·김병하·김이순 등과 함께 지상리(支上里) 주민 500여 명을 지휘하여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곤봉을 들고 다소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펼쳤으며 시위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4월 5일 새벽 5시 시위대를 이끌고 지하리에 있는 헌병주재소로 향하였다. 헌병주재소에 이르러 주재소에 돌을 던지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맹렬한 시위 현장을 목격한 일제 헌병은 총으로 시위대를 위협하며 해산을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헌병과 시위대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헌병의 무력에도 만세시위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였다. 헌병의 총탄에 시위대는 흩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주민 5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협박죄, 상해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후 붙잡혀, 같은 해 10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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