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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永淑

永淑

1884. 9. 24 ~ 197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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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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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은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4년 9월 24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은하면(銀河面) 장곡리(長谷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9일 홍성군 은하면 장곡리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은하면은 1919년 3월 하순부터 여러 차례 만세운동이 일어났지만, 면내의 다른 지역과 연계되지 못하고 고립적인 만세시위의 양상을 띠었다.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산지와 구릉이 끊임없이 이어져 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은하면 최초의 만세시위는 3월 21일 면사무소 소재지인 대천리(大川里)에서 일어났다. 최초의 만세운동이었던 대천리의 만세시위 이후 약 3주 뒤인 4월 9일 장곡리에서 새로운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는 은하면에서 일어난 두 번째 만세시위였는데, 여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명규(田明圭)·전순삼(田順三)·전치일(田致一)·전이진(田利鎭) 등과 함께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던 만세운동의 상황을 파악하고, 고향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날 밤 다른 동지들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규합하여 향리에서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 직후 일제 경찰이 파견되었고, 관련자들을 조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1919년 4월 16일 홍성경찰서의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고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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