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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文

元文

1901. 7. 7 ~ 1968.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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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元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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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驪州)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여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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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여주군 북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901년 7월 7일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북내면(北內面) 외룡리(外龍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여주군 북내면 일대에서 발생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한 만세운동은 곧이어 경기도로 확산되었다. 경기도 여주의 만세운동은 4월부터 본격화되었다. 조경호(趙經鎬)·원필희(元弼喜) 등과 함께 만세운동 거사일을 여주 읍내의 장날인 4월 5일로 정하고 만세시위를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4월 1일 외룡리에 살던 경성공립농업학교(京城公立農業學校) 학생 이원기(李元基)는 소지하고 있던 독립선언서를 참고하여 만세시위에 사용할 경고문을 제작하였다. 이원기가 작성한 경고문을 자신의 집에서 약 40장 정도 필사해 두었다. 그리고 이원기의 집에서 강영조(姜永祚)와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시위 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시위운동을 준비하던 중인 4월 3일 최영무(崔永武)·강만길(姜萬吉) 등이 북내면 일대의 장암리(長岩里)·덕산리(德山里)·외룡리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4월 5일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했던 계획을 앞당겨서 이들과 합류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를 주동한 사람들은 관내 각지의 주민을 이끌고 북내면 당우리(堂隅里) 공북학교(拱北學校)에 집결하였으며, 그 규모는 약 800명에 달하였다. 이원기·최영무·김학수(金學洙) 등은 미리 제작해 두었던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의 선두에 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대와 함께 여주 읍내를 향하여 행진하던 중 북내면 오학리(五鶴里)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의 무차별적 발포가 일어나자 해산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유로 붙잡혔고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고, 같은 해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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