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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元伊

元伊

1865. 8. 8 ~ 1930.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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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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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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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65년 8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축산면(丑山面) 상원리(上元里)에서 태어났다. 짚신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초혜상(草鞋商)이었다. 1919년 3월 영덕군 영해면(嶺海面) 성내동(城內洞)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파되자 영덕군에서는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의 조사(助事)였던 김세영(金世榮)이 만세운동을 처음으로 계획하였다. 김세영은 1919년 3월 초순 평양(平壤)으로 유학을 떠나던 도중에 서울에서 전개되던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였다. 고향 영덕으로 돌아와 구세군 참위(參尉) 출신의 권태원(權泰源)을 교회에서 만나 만세시위를 함께 할 동지로 규합하였다. 이들은 전국적인 만세시위에 영덕 지역에서도 사람들을 모아 동참하기로 계획하고 실행 방안을 논의하였다. 한편 3월 15일 영해면(盈海面)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병곡면(炳谷面) 송천동(松川洞)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 조사 정규하(鄭奎河)도 권태원을 만나 뜻을 모은 후 3월 18일 성내동의 영해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영덕군 내 각 지방의 양반가문 문중과 기독교인 및 지방 유지들을 설득하였다. 3월 18일 장날을 맞은 영해면 성내동(城內洞) 시장에서 사전에 계획한 대로 만세운동을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영해면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2,000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 시장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순식간에 확산되자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 순사 스즈키 지로(鈴木鶴次郞)는 시위대를 향하여 해산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이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순사를 공격하였다. 나아가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경찰관주재소, 영해면사무소 등 각 관공서로 향하여 기물을 파손하였다. 또한 영덕경찰서장 시게요시 츠마고(茂義孫)와 인솔 순사를 공격하였고, 철수하는 순사들을 뒤쫓아 축산면 상원동(上元洞) 최수경(崔壽敬)의 집 부근에서 영덕경찰서장 일행을 공격하여 상처를 입히고 제복·제모·패검·총기 등을 빼앗기도 하였다. 함께 활동한 박익찬(朴益燦)의 공술 내용에 따르면, 김실광(金實光)·이주덕(李周德)·최태봉(崔泰奉)·박용달(朴龍達)과 함께 최수경의 집 부근에서 순사 4명을 추적하다가 붙잡아 구타하다가 철수하였다. 사법경찰 사무 취급 심문 조서에도 1919년 3월 18일 최수경 집 앞을 지나가다가 30여 명의 군중이 일본인 순사를 포위하고 구타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에 가담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상해, 소요죄 및 공무집행 방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도 동일하게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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