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源熙
源熙1898. 9. 24 ~ 1935. 9.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양양군 양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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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8년 9월 24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양양면(襄陽面) 감곡리(甘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4일 양양군 양양면 감곡리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양양군 양양면 만세시위는 이석범(李錫範)·이교정(李敎貞)·이교완(李敎完)·최인식(崔寅植) 등이 중심이 된 유학자 계열과 조화벽(趙和璧)·김필선(金弼善)·김재구(金在龜)·김규용(金圭容)·김계호(金啓鎬) 등 기독교 감리교 계열의 인사들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유학자들은 이석범이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계기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감리교인들은 조화벽이 버선 속에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양양교회 청년부 소속 김필선에게 전달한 것을 계기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추진하다가, 거사 하루전인 3일 김필선과 최인식이 만나면서 연합하게 되었다. 두 세력이 통합되면서 만세시위 참여 확대를 위해 마을마다 책임자를 두었다. 이때 아버지 이관진(李冠鎭)·형 이원도(李源燾)와 함께 감곡리의 책임자가 되었고,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며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유하였다. 4월 4일 아침 일찍 아버지·형과 함께 감곡리 주민들을 모아 양양면 읍내로 향하였다. 세 부자가 나란히 선두에서 태극기를 들고 약속 장소인 장터로 나아갔다. 마을 사람들과 장터에 이르자, 만세시위를 위해 모인 거마리(車馬里)·임천리(林泉里)·상평리(上坪里)·북평리(北坪里)·조산리(造山里), 손양면(巽陽面) 가평리(柯平里), 서면(西面) 용천리(龍泉里) 등의 주민들과 장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전 11시경 최인식이 앞으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과 같이 ‘독립만세’를 연호하였고,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오후에는 양양경찰서 앞으로 이동하고, 어제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구속된 이석범·이건충(李建忠) 등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경찰서장은 완강한 입장을 보였고, 이 과정에서 손양면 가평리 구장(區長)인 함홍기(咸鴻基)가 사범주임의 칼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함홍기가 끝까지 경찰서장을 꾸짖으며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경찰서와 군청을 부수며 무력으로 대항하였다. 밤늦도록 계속된 만세시위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며 해산을 시도하였다. 일제 경찰의 무차별적인 사격으로 권병연(權炳淵)·김학구(金鶴九)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서면 용천리 구장 노병우(盧炳禹)·남순극(南淳極)·최명옥(崔明玉) 등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아버지·형과 함께 피신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의 대대적인 수색 과정에서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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