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應善
應善1884. 12. 13 ~ 1962. 7.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화천군 상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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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84년 12월 13일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화천군 상서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이끌었다. 화천군 상서면 만세시위는 같은 마을에 사는 이창선(李昌善)의 주도로 일어났다. 1919년 3월 27일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마을 회의를 위해 모인 후, 주요 인사들과 함께 따로 남아 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창선이 화천군에서도 만세시위를 펼치자고 제의하였고, 이에 박용구(朴容九)·심경지(沈敬之) 등과 함께 동의하였다. 이들과 함께 다음날인 28일 화천 읍내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인근 마을에도 이 계획을 알려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에 이창선·심경지·이재영(李載榮) 등과 함께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의 취지를 알리며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28일 새벽 주도자들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른 후, 약속 장소로 향하였다. 봉오리를 비롯한 다목리(多木里)·파포리(巴浦里) 주민들이 봉오리와 파포리 사이에 위치한 산기슭에 모이자, 주도자들과 함께 이들을 이끌고 태극기를 앞세워 상서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이때 만세시위 참여자들은 몽둥이·돌·낫·괭이 등을 들고 뒤를 따랐다. 약 2,0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상서면사무소에 도착해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면장과 면서기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면장 정종하(鄭鍾夏)가 거부하였다. 그러자 시위대와 함께 면장과 직원들을 밖으로 끌어내고, 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시위대는 면장 등을 앞세우고, 다시 읍내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정오 무렵 신풍리(新豊里) 앞 주막거리에 도착한 후, 점심을 먹기 위하여 행진을 멈추었다. 이때 산양리헌병주재소에서 출동한 일제 헌병의 급습을 받았다. 시위대와 함께 일제 헌병에게 맞서며 헌병보조원을 구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화천분견소 헌병과 춘천 수비대까지 포함된 일제 군경이 출동해 밥을 먹고 있는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4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행하였고,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이 일로 1919년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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