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翊相
翊相1894. 8. 15 ~ 1973. 4.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관련 사건
- · 1919년 산청군 신등면
- · 단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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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3) 1894년 8월 15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남사리(南沙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춘도(李春道)이다. 1919년 3월 20~21일 산청군 신등면(新等面)과 단성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산청군 신등면에서 약 100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헌병들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약 20명이 연행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분노해, 장날인 3월 20일 신등면 단계리(丹溪里)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2시경 약 600명의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헌병들이 다시 출동해 진압에 나서자, 시위대 일부를 이끌고 단성면 성내리(城內里)로 향하였다. 그러나 진주(晉州)와 거창(居昌)에서 지원을 위해 출동한 헌병대가 만세시위 약 30명의 주도자들을 검거하고,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만세시위 이후 검거를 피한 주도자들은 다음날 단성면 성내리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재개하기로 하였다. 3월 21일은 성내리 장날로 시장에는 약 1,000명의 사람들이 집결해 있었다. 오후 1시경 시위대와 함께 만세시위를 시작하였고, 전날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들과 대치하였다. 그러자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11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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