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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翼鍾

翼鍾

1898. 4. 20 ~ 195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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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翼鍾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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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진위(振威)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진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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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울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898년 4월 20일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현 평택시) 고덕면(古德面) 율포리(栗浦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범창(李範昌)은 1923년 민립대학 발기총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2학년으로,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경성의학전문학교 2학년 함태홍(咸泰鴻)으로부터 독립선언과 만세운동 소식을 듣고 탑골공원으로 나가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였다. 오후 2시경 탑골공원에서는 200여 명의 학생들을 포함한 군중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탑골공원을 나와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대한문 앞을 지나며 행진하다 군중과 갈라져, 혼자 황금정(黃金町, 현 을지로 일대)을 지나 창덕궁 앞으로 갔다. 그곳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던 군중들과 함께 다시 만세를 불렀다. 이후 종로 방향으로 나가다가 근처의 학생 2~3명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고, 주변 사람들을 만세시위에 동참시키면서 동대문으로 행진하였다. 또한 종로 4정목(현 종로4가 일대) 경찰관파출소에서 선언서 낭독과 배포 혐의로 체포된 한 학생을 풀어달라고 일제 경찰에 요구하였다. 그러다가 체포되었지만 방면되었고, 3월 15일 다시 붙잡혀 김종현(金宗鉉)·최강윤(崔康潤)·박승영(朴勝英) 등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미결구류일수 중 60일 본형 산입)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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