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寅夏
寅夏1894. 8. 1 ~ 1980. 1.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보은군 탄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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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2) 1894년 8월 1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탄부면(炭釜面) 구인리(求仁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4월 11일 이창선(李昌善)·김용섭(金用燮)·이준영(李準永) 등과 함께 탄부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탄부면에서의 만세시위는 같은 마을 사람인 이창선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창선은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충북지역에서도 시작된 사실을 알고, 평소 시국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교류하고 있던 지인들을 동지로 규합하여 함께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하였다. 이때 동민인 김용섭, 길상리(吉祥里) 주민인 이준영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거행하자고 제안하는 이창선의 의견에 곧바로 찬성하고 동참하였다. 4월 11일 저녁 8시경 김용섭이 먼저 풍물을 쳐서 마을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이때 이창선·이준영과 함께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의 취지를 설명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적극적으로 공감한 주민 수십명이 동참하자, 이들을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길상리로 행진하였다. 이어서 길상리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약 100명으로 불어났다. 이창선 등과 함께 이들을 이끌고 길상리 뒷산인 삼봉산으로 올라가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후 만세시위 참여자를 조사·색출하기 위해 파견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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