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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仁洪

仁洪

1901. 11. 9 ~ 1992.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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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仁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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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金泉)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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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안동군 안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901년 11월 9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아포면(牙浦面) 송천동(松川洞) 에서 태어났다. 이후 본적지인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으로 이주하였다.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이명은 이홍이(李洪伊)이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8일 안동군 안동면 장날에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원진(金元鎭), 안동교회 목사 김영옥(金泳玉), 장로 김병우(金炳宇) 등과 함께 안동면의 만세시위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김원진과 김영옥 등이 3월 12일 예비검속을 당하면서 거사일이 미루어졌다. 이에 안동면 장날인 3월 18일로 날짜를 정하고, 장터에서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와 격문을 만들며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던 중 송기식(宋基植)·송홍식(宋弘植) 등의 유림들도 합세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협동학교(協東學校) 학생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이들을 설득하여 만세운동에 합류시켰다. 거사 하루 전날 30여 명의 학생들을 안동면으로 불러 여관에 유숙시키다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일제 경찰에게 잡혔으나 다행히 ‘훈계’ 방면되었다. 3월 18일 거사 당일 협동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안동면 장터로 향하였다. 정오 무렵 기독교 계열에서 먼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고, 곧 유림측에서도 군중들을 이끌고 장터로 모이면서 두 시위대가 합류하였다. 이때 협동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에 동참하였다.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시위대 행렬에 장터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환호하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주도 세력과 함께 선창하자 시위대도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일제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여 무력으로 시위대를 위협하였고, 이때 주도 세력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로 형이 유지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해 6월 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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