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烈鎬
鎬1893. 3. 14 ~ 1977. 1.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간회 예안지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예안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3년 3월 1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도산면(陶山面) 온혜리(溫惠里)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에는 도산면 의일리(宜一里)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진성(眞城)이고, 자는 경재(敬哉)이며, 호는 일농(一儂)이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때 안동 지역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열에 참여하기 전 먼저 동지를 규합하여 대한청년지(大韓靑年誌)·경고문·태극기 등을 제작하였다. 3월 17일 장날 예안(禮安) 장터에서 군중에게 미리 제작한 태극기 등을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좀 더 효율적인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다가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20년 정인옥(鄭寅玉)으로부터 군정서(軍政署) 도장이 찍힌 군자금 영수증 용지를 받았다. 군정서는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군정부로 항일 무장 운동단체가 결성한 군정부(軍政府)를 말한다. 군정서의 군자금 영수증을 이용하여 안동과 주변 지역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영주경찰서에서 40여 일 동안 갇혀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대구지검 안동지청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되고 1920년 10월 19일 풀려났다. 1921년에는 김재천(金在天)·선영기(宣永基)·김재윤(金在允)·송종빈(宋鍾斌)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치기로 결의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11월 25일 전북 익산군(益山郡)에 거주하는 김용선(金溶善)으로부터 군자금 180원을 모금하였으며, 활동 영역을 넓혀 전국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2년 3월 2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죄로 징역 6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같은 해 6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는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 예안지회(禮安支會)의 조직에 주력하였다. 예안지회는 안동 예안지구에 설치된 신간회 지역 지회 중 하나로 이 지역 대표적인 사회운동단체였다. 1942년부터는 충남 대덕군(大德郡) 금병산(錦屛山)에서 동학 계열의 종교인 수운교(水雲敎)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수운교는 1923년 이상용(李象龍)이 서울에서 창립한 동학계의 신종교로 유·불·선을 삼합하는 교리체계를 만들어 종교 활동을 하였다. 일제의 종교탄압 과정에서 흥룡사(興龍寺)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광복 이후 원래의 수운교로 돌아왔다. 수운교의 간부로서 기도 중에 만세를 봉창하는 등 포교 활동과 독립운동을 함께 전개하였다. 수운교 활동이 계속되자 1944년 또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 5개월간 구금당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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