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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容德

容德

1890. 8. 12 ~ 195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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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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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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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옥구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90년 8월 12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에 가입하고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10월 2일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 등이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瑞穗支會)를 결성하고 조합원을 모집하자, 이에 찬성하고 가입해 활동하였다. 당시 옥구에서는 높은 소작료로 인한 일본인 지주의 횡포가 심각하였다. 이에 소작인의 생존권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합원들과 함께 식민농업회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과 이를 비호하는 일제에 대항하여 투쟁하였다. 이엽사농장은 일본인 지주가 설립한 식민농업회사로서 본점을 전주(全州)에 두고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땅을 확보하고, 이를 1,700여 명의 한국 소작인들에게 경작시키고 있었다. 1927년 이엽사농장은 서수면의 소작인들에게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였다. 이는 당시 평균 소작료인 45%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이에 장태성과 김행규(金杏奎) 등은 농장 지배인 사이토(齊藤信一)에게 소작료를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서수지부장인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이유로 서수면 경찰관주재소 일제 경찰에게 검거되었다. 이진섭(李鎭燮)으로부터 장태성이 주재소에 붙잡혀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과 함께 전해 들었다. 이때 조합원 수백 명과 함께 밤 9시경 주재소로 몰려가 일제 경찰에 항의하며 공격을 감행해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한 귀가 도중 일제 경찰에게 박상호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밤 10시경 다시 주재소를 공격하여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동료 80여 명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군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같은 해 12월 8일 붙잡힌 동료 약 50명과 함께 군산검사국으로 넘겨졌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구금자 탈취죄 및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군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같은 해 7월 10일 이원섭(李元爕)·이정춘(李正春)·오남용(吳南龍)과 함께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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