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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昌植

昌植

1900 ~ 1927.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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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昌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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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진남포(鎭南浦)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진남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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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흑기연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평안남도 진남포부(鎭南浦府) 후포리(後浦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5년 당시 25세이기 때문에 1900년생으로 추정된다. 원산의 여러 학교에서 교원으로 일하면서 산술(算術)과 일본어를 가르친 것으로 알려졌다. 1924년 무렵 같은 고향 출신인 한병희(韓昞熙)와 곽윤모(郭胤模, 이명 (郭撤)) 등과 함께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서울 거주 중 1924년 12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명 불령사(不逞社)사건에 연루되어 검속된 바 있는 홍진유(洪鎭裕)·서상경(徐相庚) 등 흑우회(黑友會) 동지들을 만나 국내 아나키스트 조직의 재건을 시도하였다. 홍진유 등은 1923년 9월 일왕(日王) 폭살계획을 추진하던 박열(朴烈)의 폭탄유입계획에 연루되었다가 1924년 6월 풀려나 귀국한 상태였다. 평소 일제 식민통치에 강한 저항심과 자유·평등의 신사회 건설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이들과 만나 함께 조직 건설 계획에 동조하였다. 홍진유는 서울에서 신영우(申榮雨)·이복원(李復遠, 이명 (李哲))·한병희 등과 함께 그해 12월부터 서울과 충주(忠州)의 유지들과 더불어 회합을 갖고 아나키즘 선전 활동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1925년 3월경 서울 낙원동(樂園洞) 수문사(修文社)에서 홍진유를 비롯한 서상경·이복원·신영우 등 도쿄 흑우회 멤버들과 서천순(徐千淳, 일명 徐哲)·서정기(徐丁夔)·곽윤모 등 충주지역 유지들, 그리고 한병희 등 10여 명과 함께 흑기연맹(黑旗聯盟)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창립 취지서에서 “자아의 확충을 저해하며 만인의 행복을 유린하는 모든 불합리한 제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권력과 결합된 조직을 철저히 배척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토의를 거듭한 끝에 발기준비회를 구성해 5월 초 창립대회를 열기로 하고, 기관지를 발행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기로 하였다. 그러나 1925년 4월 25일 일제 경찰은 흑기연맹 회원 전원을 ‘체제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밀결사’로 보고 체포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지 3개월 후 1925년 8월 25일 변호사 이인(李仁)과 김병로(金炳魯)·김용무(金用茂) 등 3명이 무료 변론하였다. 1925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다가 1926년 11월 만기로 풀려났다. 이듬해 2월 16일 식민지 현실에 비관하면서 고향인 진남포의 비발도(飛鉢島) 해안에서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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