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義俊
義俊1893 ~ 1929. 1. 2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참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관련 사건
- · 마시탄(馬嘶灘)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8)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밀산면(密山面) 송주동(松奏洞)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27년 당시 35세로, 1893년생으로 추정된다. 본만주로 건너간 이후에는 펑텐성(奉天省) 지안현(輯安縣) 타이핑거우(太平溝)에 거주하였다. 이명으로 이병준(李秉俊)·한권웅(韓權雄) 등을 사용하였다.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참의부(參議府)에 가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1월 김창균(金昌均)과 만주로 건너가 대한통의부 의용군 제1중대에서 활동하였다. 그해 6월 6일 김정욱(金貞旭) 외 3명과 평북 강계군(江界郡) 어박면(漁雹面) 풍룡동(豊龍洞) 구창참(舊蒼站)에서 평안북도경찰부 수색대와 교전 후 자취를 감춰 일제의 국경 치안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독립군 단원들은 각각 약 70발의 탄환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6월 12일 오전 12시경에는 위원군 봉회면(鳳回面) 호동령(芦洞嶺)에서 고산령우편국에서 위원군우편국으로 운송되던 우편물을 탈취하여 우편물과 함께 있던 현금 1,500원을 군자금으로 충당하였다. 또한 위원군 대덕면(大德面) 장기섭(張基涉)의 집에서도 군자금 50원을 모집하였다. 8월 21일에는 이화주(李化周) 외 6명을 거느리고 강계군 풍청동(豊淸洞) 하청참(河淸站)에 있는 경찰관임시출장소를 습격하여 경찰관 1명에게 총상을 입혔으며, 근처의 민가 9채를 불태웠다. 1923년 9월 참의부가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였다. 1924년 5월 19일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압록강 대안 국경지대 순시에 나선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의 지휘 아래 작전에 돌입하였다. 장창헌(張昌憲)·이춘화(李春和)·김창균(金昌均) 등의 대원들과 마시탄(馬嘶灘)의 중국측 대안인 지안현(輯安縣) 사랑곡(四狼谷) 팔합목(八合目)에 잠복하고 있다가 경호선 비조환(飛鳥丸)을 총독이 승선한 배로 알고 총격을 가하였으나, 뒤따르던 웅비호(雄飛號)에 타고 있던 사이토는 총격전 틈을 타서 도망쳐버려 작전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해 7월 15일 김창균과 일제 밀정 한일룡(韓一龍)을 총살·처단하였으며, 7월 16일 평북 강계군 곡하면(曲河面) 쌍부동(雙富洞)에서 신의주와 강계를 잇는 전신주 5개와 같은 군 어운동(漁雲面)에서 전신주 4개를 절단하여 통신을 두절시켰다. 이어 신용섭(申龍燮) 등 6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강계군 공서면(公西面) 두흥동(斗興洞)의 계인계(桂仁桂)와 인근 염진희(廉珍熙) 집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7월 24일에는 밀정 장갈성(張渴成)을 총살·처단하였다. 또 강계군 시중면(時中面) 시천동(時川洞)의 김찬원(金燦元) 집에서 두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5년 6월 19일 재차 강계에 진입하여 일제 경찰과 전투를 벌였다. 1926년 말 중국 관헌에 체포되어 일제 경찰에 인계되었다. 이어 평북 만포경찰서(滿浦警察署)에서 조사를 받고, 1927년 10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1928년 11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전신법(電信法) 위반, 통신 방해죄로 사형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6척(尺) 장신의 건장한 체격의 검은 얼굴’의 그가 법정에 들어서자 방청객들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같다’고 웅성거렸다고 한다. 사형이 확정되자, 재판장을 향해 “이미 각오한 바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퇴정하였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 1929년 1월 28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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