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泳三
泳三미상 ~ 1908.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안규홍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전라남도 출신으로 참여한 의병부대나 활동 지역 등으로 미루어볼 때, 보성군(寶城郡) 또는 그 인근지역 출신일 것으로 추정된다. 1908년 거의한 안규홍(安圭洪) 의병부대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본래 머슴 출신으로 대표적인 평민 의병장인 안규홍은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당하자, 이에 격분하여 의병을 일으키고 전남 보성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때 안규홍은 “왜적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의 원수이며 임진년(壬辰年) 이후부터는 하늘을 같이 하고 살 수 없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를 삼켜 버리고 우리 임금을 욕보이고 우리 백성을 노예로 만들게 되었다. 우리들은 선왕의 신민이요 선조의 자손으로 이 광경을 차마 보고만 있겠느냐. 한 도둑놈만 죽이더라도 실로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며 항일 의지를 밝히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소작농과 머슴들을 널리 의병으로 모집하였다. 그러자 여기에 오주일(吳周一)을 비롯한 해산 군인들이 합류함으로써, 안규홍 의병부대가 조직되었다. 안규홍 의병부대가 200여 명의 규모로 각 부서와 직위가 체계화되던 1908년 2월경 의병부대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부대장 염재보(廉在輔), 참모장 오주일·나창운(羅昌運), 중군장 김종철(金鍾喆)·이양선(李良先)·안재찬(安載瓚), 선후군장 선규명(宣圭明)·김학천(金鶴千)·오윤칠(吳允七), 포량장(布糧將) 박제현(朴濟鉉), 서기 임정현(任淨鉉) 등과 함께 선봉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동료 의병들과 함께 1908년 8월 안규홍 의병장의 지휘를 받은 진산대첩(眞山大捷)에서 대승을 거두는데 크게 활약하였다. 그러나 같은 달 순천 병치(竝峙)에서 전개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부대의 승리에는 일조하였지만, 교전 과정에서 적이 쏜 포탄에 맞아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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