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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永燦

永燦

미상 ~ 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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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永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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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江陵)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강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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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민용호 의병부대(관동창의진)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강원도 강릉(江陵) 출신이다. 감찰직 벼슬을 지냈다. 1896년 1월 강원도 원주(原州)에서 민용호 의병부대에 들어가 좌군장(左軍將)과 중군장(中軍將)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희생되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반발하여 일어난 민용호의 관동창의진(關東倡義陣)은 의병모집을 위해 원주를 거쳐 평창(平昌)으로 이동하였다. 1896년 1월 28일 평창 진부(珍富)에 들어온 관동창의진은 군사직을 맡고 있던 박동의(朴東儀)의 헌책에 따라 강릉(江陵)을 거점으로 삼고 원산(元山)을 점령한 후 평안도(平安道)와 함경도(咸鏡道)로 진출해 그곳에서 병사를 모아 청나라와 연합작전을 전개한다는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관동창의진은 강릉으로 이동하였다. 1896년 1월 29일 의병부대는 대관령을 넘어 강릉성 밖의 구산[(龜邱山)]까지 이동한 후 강릉 진입을 시도하였지만, 뜻밖에 토착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다. 더욱이 강릉에는 이미 권익현(權益顯)·심홍택(沈鴻澤) 등을 중심으로 의병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토착 의병에게 ‘부중의진(府中義陣)’을 인정하는 격문과 단발령 방관을 질책하는 격문을 보냈다. 그러자 토착 의병이 경무서(警務署)와 순검청(巡檢廳)을 부수고, 친일 개화정책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던 고준식(高俊植) 경무관보(警務官補)를 잡아 민용호에게 인계하였다. 이로써 관동창의진은 즉시 강릉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후 민용호는 토착 세력을 흡수하여 강릉을 의병운동의 근거지로 만들고, 의병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관동구군창의소(關東九郡都倡義所)를 설치하였다. 이어 원산 공격을 위한 북진 계획을 서둘러, 같은 해 2월 7일 북으로는 함경남도, 남으로는 경상북도에 이르기까지 소모사(召募使)를 파견하였다. 관동창의진이 강릉에서 병력을 정비하던 이 무렵 가담한 것으로 보이며, 좌군장(左軍將)으로 임명되어 북진에 힘을 보태었다. 드디어 1896년 3월 4일 민용호는 2,380명의 대병력을 이끌고 원산항을 공격하기 위해 출정하였다. 그해 3월 8일 선발대가 원산항에서 80리 떨어진 신평장(新坪場)에 도착한 후, 원산공격에 앞서 3월 16일 러시아공사관 등에 공문을 보내 원산공격계획을 통보하였다. 또 거류 중인 일본인 이외의 다른 외국인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하는 글을 첨가하였다. 이와 동시에 소규모의 선발대를 원산에 잠입시켜 곳곳에 방화하도록 하여, 민심을 교란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방화 초기에 이를 신속히 진화함으로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같은 해 3월 9일 관동창의진의 본진은 계속 북상해 양양(襄陽)·간성(杆城)을 지나 고성(高城)에 도착하였다. 고성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통천(通川)을 거쳐, 3월 17일 원산으로부터 70~80여리 떨어진 안변(安邊) 신평[(新仙坪)]에 도착하였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원산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배후가 되는 안변을 반드시 먼저 점령해야 했다. 그러나 1,700여 명의 병력이 나빠진 날씨 때문에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고, 안변 신평에 머물렀다. 그러는 사이 원산에서 파견된 일본군은 의병의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의병부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진눈깨비가 내리던 3월 19일 관동창의진을 먼저 공격하였다. 이에 백병전까지 하는 결사항전으로 일본군 장교 2명을 사살하고 13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전과를 거두며, 이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하지만 의병부대는 결국 패하고, 양양을 거쳐 강릉으로 회군하였다. 제1차 원산공격 실패 이후 의병부대 상호간 연합작전을 구사할 것을 호소하면서 다시 전투를 준비하였다. 이때쯤 중군장 겸 총남북절도사(摠南北節度使)를 맡게 되었으며, 같은 해 4월 벌어진 삼척(三陟)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민용호의 초청으로 연합관계를 형성한 경북 영양(英陽)의 김도현(金道鉉) 의병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가, 1896년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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