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守龍
守龍1911. 12. 10 ~ 1998. 7.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재대판가덕인친목회
- · 가덕인청년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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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1년 12월 10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천가면(天加面) 동선리(東仙里)에서 태어났다. 사립소학교 4학년을 수료하였으며, 1927년 3월 무렵 일본으로 건너 갔다. 일본에서는 이원수룡(李原守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던 중, 재대판가덕인친목회(在大阪加德人親睦會)에 가입하였다.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강탈당한 사실을 역설하며 회원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또 재일조선인의 일치단결된 힘을 통해 일제히 봉기하여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통해 독립운동을 강조하였다. 1934년 3월 무렵 재대판가덕인친목회가 해산되자 김근도·이수강·김성규 등과 함께 가덕인청년부회(加德人靑年部會)를 결성하였다.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 체육 활동과 상호 친목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일본에 있는 동포 청년들의 결속을 공고히 하여 장래 조국 독립의 추진력이 될 수 있도록 실력 양성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37년 3월 중순부터 1938년 6월경까지 수차례 동료들과 독립에 관한 구체적 실행 방법과 청년부회 조직의 강화를 도모하였다. 또 중일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본은 반드시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후 청년부회 회원들과 1938년 7월부터 1939년 1월까지 수차례 특별좌담회를 열어 일제의 만행과 실상을 폭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주력하였다. 1942년 9월 오사카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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