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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永三

永三

1875 ~ 191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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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永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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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임피(臨陂)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임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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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박찬중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7)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7) 전라북도 임피군(臨陂郡) 남이면(南二面, 현 군산시 대야면) 출신이다. 1909년 판결문에 당시 나이가 35세로 기록되어 있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07년 박찬중(朴贊仲) 의병부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삼아 광무황제(고종)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더불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체결로 내정까지 침범하며 대한제국 군대도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한 군인들과 애국지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키거나 의병부대로 들어가 항일투쟁을 펼쳤다. 1909년에 이르러 의병 활동은 더욱 발전하여 고조화되었다. 박찬중은 1909년 당시 부하 11명을 지휘하며 전북 일대에서 군자금과 군수품 모집 활동을 펼치던 의병장이었다. 같은 해 (음)7월 8일 박찬중 의병부대에 들어갔고, (음)7월 11일까지 전북 함열(咸悅)·김제(金堤)·전주(全州)·금구(金溝) 등의 지역을 이동하면서 활동하던 의병장 등의 짐을 운반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부대에 소속된 신봉민(申奉民)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9월 10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던 중 1910년 2월 2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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