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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龍國

國

1904. 5. 14 ~ 197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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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龍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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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길주(吉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길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간회
  • · 함북청년총연맹
  • · 길주청년동맹
  • · 조선청년총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길주공립보통학교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904년 5월 14일 함경북도 길주군(吉州郡) 길성면(吉城面) 길북리(吉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서강(李曙江)이다. 1927년 이후 신간회(新幹會), 함북청년총연맹(咸北靑年總聯盟)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7월 20일 신간회 길주지회 설립대회에 참석하였고, 서무부 상무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해 8월 4일 길주청년회(吉州靑年會) 창립 8주년 기념강연회에서 강연하였다. 이 무렵 함북기자단(咸北記者團) 길주집행부에서 조사·발표한 ‘길주공립보통학교 사건’의 권고문 작성을 맡아, 학교 당국자를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하였다. 길주청년회 집행위원회에서 서무부 담당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8월 6일 함북청년총연맹 중앙집행위원과 정치문화부장을 겸임하였다. 함북청년총연맹은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의 산하단체로서 함경북도 각 군의 동맹이 연합하여 구성되었다. 함북청년총연맹 소속으로 민중의 정치적·경제적 이익 획득, 청년 대중의 의식 교양과 단결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4월 15일 황태성(黃泰成)·서성근(徐成根)·김창일(金昌一) 등과 함께 함북 경성군(鏡城郡)에서 개최된 함북청년총연맹 제2회 정기대회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민족이 당면한 공동의 적과 투쟁하기 위해 전민족적 협동전선을 구축하여야 한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는 신간회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결의하였다. 4월 20일에는 황태성·정기환(鄭箕桓) 등과 함께 김창일의 집에서 대회 결의록을 작성하고, 약 40부를 인쇄해 함북청년총연맹 산하 동맹 10여 개에 배부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펼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8년 6월 28일 황태성과 함께 청진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0년 7월 11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받고 불복해 항소하였다. 같은 해 12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에 대해서 무죄를 받았지만, 보안법과 출판법,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 등으로 다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365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단식동맹(斷食同盟)을 조직하고, 예심기한(豫審期限) 단축을 요구하는 등 일제에 대한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 1931년 1월 10일 동지 9명과 함께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다. 하지만 곧바로 함경북도의 궁민구제사업을 비판하고 조선총독부 통치를 비방하는 신문 기사를 실어 다시 붙잡혔다. 1931년 11월 28일 송치되었으며, 1932년 2월 16일 청진지방법원 성진지청에서 이른바 ‘명예훼손죄’로 벌금 50원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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