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運鎬
運鎬1852. 6. 15 ~ 1930. 2.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권세연 의병부대(안동의병)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3) 1852년 6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미질동(美質洞, 현 안동시 예안면 미질리)에서 이중권(李中權)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자는 상오(相五), 호는 대호(大瓠)이다. 1896년 권세연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896년 1월 17일 안동 봉정사(鳳停寺)에 40~50명 정도의 유림들이 모여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협의하였다. 다음날 유림 1,000여 명이 참여하는 향회(鄕會)가 개최되었다. 향회에서 호계서원에 본부인 도소(都所)를 차리고, 1월 20일 안동 삼우당(三隅堂)에 10,000여 명이 모여 권세연(權世淵)을 의병장에 추대하였다. 권세연은 의병 동참을 촉구하는 격문을 발표하였고, 이때 좌군을 지휘하는 좌익장(左翼將)에 임명되었다. 이후 안동부(安東府)를 장악하였고, 탈출한 관찰사 김석중(金奭中)은 대구부(大邱府)의 관군 300명과 일본군 100여 명을 이끌고 안동의병소를 공격하였다. 1월 26일 안동의병은 예천(醴泉) 방면으로 나아가 예천과 안동 접경지대에서 벌어진 첫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그러자 선봉장 김옥서(金玉瑞)는 감애(甘厓), 중군장 유완(柳琓)은 풍산(豐山), 우익장 권용현(權用鉉)은 도원(道源)에, 좌부장 이의호(李宜鎬)는 노하리(鷺下里)(현 송하동)에 진을 쳤다. 이때 후위부대에 참여하여 송야교(松夜橋) 근처에 주둔하였다. 1월 29일 재차 관군과 전투가 벌어졌고, 일본군이 백일령(白日嶺, 현 안동시 남선면 구미리) 쪽으로 공격해오자 의병부대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때 우익장과 안동의 도심지 입구 송현(松峴)에서 진을 합쳤지만, 관군에 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해산하였다. 의병장 권세연도 태백산중의 구마동(九麻洞)으로 들어가면서 재기를 준비하였다. 이후 의병부대에서의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1900년 장릉(章陵) 참봉에 제수되었지만 거부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911년 이상룡(李相龍)이 만주로 망명할 때 시를 써서 축원하였다. 그리고 유창식(柳昌植)과 활민소(活民所)를 설치하여 민생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14년에는 상산(商山) 박곡(朴谷)에 대호정(大瓠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였다. 저서로는 『대호집(大瓠集)』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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